수계는 물론 불교기본교육조차 받지 않은 불자들이 수두룩하다. 법명도, 정기적인 법회 참석도, 다니는 재적사찰도 없는 불자들이 ‘불제자’ 흉내를 내고 있다. 현실이 이쯤 되다보니 시쳇말로 ‘지역구 불자는 없고 전국구 불자들만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무늬만 불자’가 많은 셈이다.
이러한 결과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불자로서 기본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도로서 의무조항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도는 교단의 공동체 일원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삼보를 호지해야 하고 보시 및 계율을 수지해야 하며 상구보리하화중생의 서원을 세우고 수행해야 한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또 이러한 의무와 함께 교육받고 참여하고 교단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권리도 있다. 자비의 문중에서 누구는 할 수 있고 누구는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까닭은 삼보의 한 축이 되는 승보가 확립되지 못하면 불교의 발전도 기약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불교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보다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하고 튼튼히 해야 한다. 처음이란 <화엄경>에서도 공덕의 어머니라고 했듯이 모든 공덕을 회향시키기도 하지만 잘못된 경우에는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처음에 놓이게 되는 삼보 호지의 불사이지만 이 큰 불사의 시작은 바로 ‘나’를 혁신하는 불사임을 또한 놓쳐서는 안 된다.
교단의 그 구성원으로서 ‘나’인 신도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지위와 역할을 강화하는 것은 신도의 교육으로만 가능하다. 교육은 백년의 대계라고 하듯이 새로운 백년, 혹은 천년을 준비하기 위한 교육을 위해 피교육자인 신도는 재적사찰을 결정하고 스님이나 기존 신도에게 입문교육에 철저를 기해야 한다.
재적사찰을 결정해야 하는 것은 ‘부처님과 나’ ‘가르침과 나’ ‘스님과 나’가 아니라 ‘삼보가 되는 나’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삼보에 들어가기 위한 ‘나’는 이에 신심을 증장하고 삼보에 귀의하는 삼귀의계와 불자의 기본 생활 규범인 5계 등을 받아서 종단의 신도가 됐음을 확인해야 한다.
신도로서 형식적인 자격을 갖춘 신도는 각 재적사찰의 법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올바른 삶의 길을 찾아야 한다. 법회에 참석할 뿐만 아니라 참회, 발원, 기도, 참선 등의 수행정진을 통해 자신을 돌이켜보며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다만 스스로 닦고 정진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불퇴전의 정진을 발원하는 불자라면 더 나아가서 반드시 이웃과 함께 실천하는 불교를 실현해야 한다. 신도로서 권리와 의무를 실천하며 불법을 배워 나간다면 제대로 된 불자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