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E GEE 이해기전 금화(金畵)로 보는 부처님의 일생
전시회 소개 ::: 이해기전 금화(金畵)로 보는 부처님의 일생
탈아우라 시대의 아우라의 복원을 꿈꾸며.. (심혜련)
심혜련(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 겸임교수)
이해기의 작품은 날 곤혹스럽게 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내가 간접적으로 TV라는 매체를 통해 경험했던 만다라에 대한 체험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트에서 티벳 승려는 기원하고 또 자기를 정화시켜야할 일이 그리도 많은지, 거의 7년 동안 매일 차디찬 돌바닥에 앉아서 하루 종일 만다라를 그리고 있었다. 돌바닥에 세밀하게 밑그림을 그린 후 그는 매일 아주 조금씩 그러나 오랜 시간을 투여해서 그 그림에 몰두했다. 그는 평온했으며, 무념무상했다. 색을 채워 넣어야하는 밑그림과 그만이 세계에 있는 듯했다. 7년의 세월이 지나 만다라는 완성되었다. 비록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완성된 만다라가 품고 있는 영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아’하고 감탄하는 아주 짧은 순간, 만다라는 사라졌다. 7년의 세월을 그려온 그 승려가 그 그림을 없애버린 것이다. 그 과정까지가 바로 만다라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그 순간 내가 느낀 예술 체험 또는 종교 체험을 난 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잊고자 했다. 그 체험에 몰두하게 될 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해기의 작품이 그 체험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둘째, 그의 작품이 디지털 시대라고 하는 현재의 매체적 상황과 결부된 디지털 매체 예술과 정면으로 부딪치기 때문이다. 이해기의 작품은 불화다. 그것도 오래전에 잊혀졌다고 하는 금니선화의 기법을 계승하고 있다. 작품의 제작 과정 또한 만다라의 제작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무릎을 꿇고 수도하듯이 아주 가는 붓으로 작업을 해야만 한다. 이 과정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인지 아니면 수도하는 과정인지 모호하다. 즉 이해기 작품이 가지고 있는 불교라는 내용, 더군다나 귀한 것의 대표 명사인 금이라는 작품의 재료, 그리고 작가의 아우라적인 필력과 많은 노동 강도가 요구되는 세밀화라는 작품의 성격과 작품의 제작 과정은 바로 벤야민이 붕괴를 예언했던 아우라의 요소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벤야민은 전통적인 예술 작품과 기술 재생산 시대의 예술 작품을 구별하면서 그 구별의 근거를 바로 아우라에서 찾았다. 그는 아우라를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 성격과 미적 경험의 측면에서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아우라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원본성에서 기인한다. 원본성을 가진 아우라는 바로 그 원본성 때문에 ‘귀한 것’으로 취급받았다. 그래서 아우라를 가진 예술 작품은 제의적 가치를 지니며, 제의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술이 기술 재생산 시대를 거쳐 현재의 디지털 매체 시대에 와서는 이러한 아우라가 몰락되며, 수용자 또한 다른 미적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해기의 작품은 전통 예술 작품이 가지고 있었던 아우라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마치 탈아우라 시대의 아우라의 복권을 꿈꾸듯이 말이다. 불화라는 내용과 형식은 제의적 가치와 직접적으로 맞물려있다. 또한 디지털 매체 기술과 예술이 결합하면서, 작가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기준들, 즉 작가가 처해있는 매체적 환경, 세밀한 손의 능력보다는 컨셉의 중요성 등과 이미지의 자유로운 변형과 생산이라는 이 시대 미술의 화두와 정면 배치한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손이 가지고 있는 필력을 이용해서 불교의 교리를 자신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이미지로 옮긴다.

그러나 이해기의 작품은 제의적 가치가 자기 빛을 제의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공간에서 나와 전시 공간이라는 장소로 들어왔다. 이전에 그가 주로 사찰에서 전시회를 가졌던 것과는 달리, 대중적인 전시 공간으로 제의적 가치를 버리지 않으면서 전시 가치를 추구하고자 한다. 이는 불교의 교리를 또는 불화를 ‘저기’가 아니라, ‘여기’라는 속세의 공간으로 끌어오고자 하는 그리고 종교화에 새로운 준거점을 마련하고자 하는 작가의 오래된 소망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소망이 디지털 매체 예술 시대에 잊혀졌던 제의적 가치를 지닌 아우라를 노골적으로 다시 끌어낸다. 그것도 아우라적으로 위장하지 않은 채, 바로 예술과 종교가 일치했던 그 시대의 그 아우라 자체로 말이다. 이로써 그의 작품은 예술과 종교라는 전통적인 물음을 다시 제기한다. 숭고와 장엄으로 다시 등장한 제의적 아우라, 이것이 바로 나의 당혹의 근거다. 물론 이해기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전통적이고 제의적인 아우라를 그대로 복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본래 불교가 가졌던 휴머니즘적 교리를 다시 보여주고 싶어 이러한 작업을 묵묵히 수행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 제의적 가치를 보지 말고, 잊혀져가고 퇴색되어가고 있는 부처님의 교리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수행을 요구한다. 이 길은 너무 멀고 힘들다.
작가 소개 :: 이해기 (李海琦)
1959년에 태어나서 1988년 동국대 미술과를 졸업하였다.
1990년 봉은사 등 11개 사찰에서 불화 순회 전시회를 가졌고, 2004년 5월에 첫 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현재는 금니선묘화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