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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C갤러리] 김영택의 펜화기행(紀行)(펜화에 담는 “한국전통 건축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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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평론가 박영택 경기대 교수 -
조선 백자에 만든 이의 낙관이나 서명이 있으면 무조건 가짜라고 합니다. '내 작품이니 멋지게 만들겠다'는 식의 욕심을 부리지 않던 조선 장인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조선 공예품을 '무아(無我)의 미를 살린 공예 예술의 최고 경지'라고 극찬하는 근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 것, 내 작품이라는
의식을 가지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러면 작품에 그 때가 묻어나는 법이지요.
만든 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건축도 마찬가지여서 서양 건축처럼 개성이 두드러진 한옥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면, 각기 다른 절의 대웅전을 정면에서
찍은 다음, 사진에서 배경과 현판의 글씨를 지우고 죽 늘어놓으면 주지 스님조차도 어느 것이 자기 절의 대웅전 사진인지 쉽게 구분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함양의
거연정과 농월정, 거창의 요수정과 같이 정자도 배경을 지우고 나면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전통 한옥들은 현대 건축가들이 당연시하는 '내 작품,
내 건물'이라는 의식이 전혀 담기지 않는 '무아의 미' 그 자체입니다.
우리의 목조건축 기술은 삼국시대에 이미 최고에 도달하였습니다. 통일신라 시대에 지은 황룡사 9층 대탑이 그 실증으로서, 현대의 기술로는 5층 이상의 목탑도 지을수
없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건축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어떻게 짓느냐보다는 어디에 짓느냐를 더 중요시한 선조들의 마음 자세가 우리 건축 문화재의 곳곳에 짙게
배어 있습니다. 자신의 삶보다는 남의 삶을 더 중요시한 아름다운 장인정신이 엿보이는 것입니다.
구한말에 조선을 다섯 차례나 방문한 영국 지리학회 회원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조선 땅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천혜의 자연에서 살아온
우리 선조들은 이 땅과 자연을 살아있는 존재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큰 바위나 오래된 고목을 존경의 대상으로 삼았고, 산맥과 지맥을 끊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자연을
극복의 대상이 아닌 '공생의 관계'로 생각한 것이지요. 그래서 집을 지을 때는 주어진 자연조건을 최대한 이용하고 환경파괴를 최소화하였습니다. 서양 건물은 자연
속에서 툭 불거져 보이는 반면, 우리 건물은 푹 파묻혀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 떄문일 것입니다. 환경 파괴로 인하여 여러 가지 엄청난 재앙에 직면한 현대사회가
따라야 할 이상적인 건축방식은 우리 선조들이 추구하였던 건축에 대한 생각에 그 해답이 있다고 봅니다.
제가 우리 건축의 아름다움을 펜화에 담고자 한 이유는 '한국 전통 건축이 세계 제일'이라는 국수주의적 주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무아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싶어서이고, 세계의 건축이 추구해야 할 '자연이 우선하는 건축'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팬화에 담은 우리 건축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판화로, 달력으로, 엽서로, 혹은 출판물의 일러스트 등으로 만들어서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보고 느끼고 즐기며 배우게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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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용 헌 (원광대 동양학 초빙교수) -
음식 가운데 ‘삼합’(三合)이라는 것이 있다. 돼지고기와 홍어를 묵은 김치에 싸서 먹는 음식이다. 이 세 가지는 각기 서로 다른 향취를 가지고 있지만, 같이 모여
있으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돼지고기의 묵직한 맛과 홍어의 톡 쏘는 맛이 묵은 김치의 맛과 어우러지면 제 3의 맛을 창조하는 것이다.
김영택 선생의 펜화를 볼 때마다 내가 느끼는 맛이 바로 이 삼합의 맛이다. 펜화에서 느끼는 삼합의 맛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바위와 물 그리고 소나무를 꼽을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각기 그 풍류가 다르지만 같이 모이면 한국 사람들이 회귀하고 싶어 하는 원형풍류(原形風流)를 완성해 낸다. 강호를 유람하는 방외지사
(方外之士)의 안목에서 볼 때 바위에서는 화기(火氣)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몸이 피곤하거나 기력이 쳐질 때 바위에 앉아서 서너 시간 뒹굴뒹굴하다보면
피로가 말끔히 가신다. 화강암에서 방사되는 양기(陽氣)의 작용 때문이다.
계곡의 물은 수기(水氣)를 머금고 있다. 화강암의 화기가 밖으로 품는 기운이라면, 계곡 물은 기운을 안으로 저장해 주는 역할을 한다. 에너지는 저장을 해야만 묘용이
생긴다. 바위와 물, 즉 화기와 수기를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있는데, 그것이 소나무이다. 소나무는 돼지고기와 홍어를 통합하는 묵은 김치와 같다. 소나무가 있기 때문에
수기와 화기는 풍류의 차원으로 승화된다.
삼합이 갖추어진 곳들은 모두 영지(靈地)에 해당하는 곳이기도 하다. 영지에 오래 머물다 보면 먼저 건강해 진다. 그 다음에는 영성(靈性)이 개발된다. 인간은 영지에서
정신을 집중할 때, 그 에너지를 받아서 어지러운 사바세계의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유.불.선의 대가들은 삼합이 갖추어진 곳에 머무르곤 하였다.
불교의 암자, 선도의 토굴, 유교의 정자. 이 세 곳은 언뜻 보면 그 외형은 다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동일한 조건을 갖춘 곳에 자리잡고 있다. 다시 말해서
유.불.선의 영지들은 공통적으로 삼합이 갖추어진 곳에 반드시 터를 잡고 있는 것이다.
김영택 선생의 펜화가 포착하고자 하는 대상들도 모두 이런 삼합이 갖추어진 곳, 한국의 영지들인 것이다. 일상의 잡사에 시달려서 산에 가지 못할 경우, 방구석에 앉아
펜화만 쳐다보아도 그 바위의 기운이 아랫배에 전달되는 것 같다. 특히 펜화는 사진이 지니는 사실감을 지니면서도 사진이 놓칠 수 있는 그 어떤 육중한 기운을 머금고
있어서 더욱 맛이 난다 .
선생의 펜화에는 한 땀 한 땀 정성이 들어가 있다. 정성은 바로 그리는 사람의 기운이 아닌가. 펜화에 등장하는 바위와 소나무, 그리고 기왓장과 서까래에는 맑으면서도
세밀한 기운이 농축되어 있음을 느낀다. 펜화는 탁자 위에 놓아도 텔레비젼 위에 놓아도, 혹은 밥상 위에 놓아도 보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 그 힘의
근원은 그리는 사람의 일상생활에서 나온다. 즉 화가의 일상생활이 맑고 정제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 정제된 내공이 어찌 현생에 모두 이룩된 것이겠는가. 윤회를
신봉하는 우리 같은 방사들이 볼 때에, 선생의 내공은 전생부터 닦은 것이 분명하다.
한국의 2천년 정신사가 농축되어 있는 삼합지(三合地). 내가 보기에 그 삼합지를 그려내는데 있어서 최적의 장르는 펜화가 아닌가 싶다. 선생의 펜화가 아파트 골방에서
시멘트 생활을 해야 하는 범부들에게 한 줄기의 영기(靈氣)를 선사해 주는 그림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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