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BMC갤러리] 김영택의 펜화기행(紀行)(펜화에 담는 “한국전통 건축의 아름다움”)
|
 |
|
|
|
|
 |
| | 영주 부석사(무량수전) | |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無量壽殿)은 1376년 중수된 건물로 나라 안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서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는 주심포
건물로 단순하기 짝이 없습니다. 문에는 꽃살창 하나 없이 단순한 정자살 창호이고 벽면에는 벽화도 없습니다. 지금은 단청도 씻겨나가 나무 맨살 그대로입니다.
이런 무량수전을 한국 건축의 백미로 꼽는 것은 ‘단순명료한 아름다움’이 ‘화려한 아름다움’보다 훨씬 윗길이기 때문이지요. 일본 공예의 아름다움과 한국
공예의 아름다움을 비교하여 ‘게이샤의 아름다움’과 ‘맏며느리의 아름다움’으로 구분짓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
 |
| | 여주 신륵사 | |
|
남한강 상류인 여강가 봉미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신륵사는 여강의 넓은 물과 모래사장이 바라보이는 곳에 있어 풍치 좋기로 손꼽아 줍니다.신륵사는 고려 말 나옹 선사가 입적을 한 후 유명해 집니다. 나옹 선사는 인도에서 온 고승 지공의 제자이면 조선 건국에 기여한 무학 대사의 스승으로서 부도는 신륵사 외에도 전국 여러 사찰에 모셔져 있습니다. 신륵사에서 나옹 선사가 입적한 후 비도 내리지 않았는데 메말랐던 강물이 별안간 불어나서 사리를 모신 배들이 떠날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신륵사 뒷편 언덕에 자리 잡은 보제존자 나옹 선사의 부도는 석종형 부도 중 최고의 조형미를 갖추었고, 조각이 섬세한 팔각석등과 석종비 모두 보물로서 꼭 찾아 볼만합니다.
신륵사는 조선 성종 3년(1472년)에 세종대왕의 영릉이 여주로 이장된 후 왕실의 원찰이 되면서 다시 한번 크게 중창됩니다. 그때 중창된 건물들이 극락보전, 명부전 입니다.동쪽 언덕에 있는 다층전탑에 보상화문 벽돌이 있어 신륵사가 고려 때 창건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다층전탑을 돌아서 여강쪽 바위언덕으로 내려가면 넓디넓은 여강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강가에 서있는 아담한 삼층석탑과 육각정인 강월헌도 해질녘 여강의 낙조 속에서 한 폭의 그림이 됩니다.
|
 |
| | 양산 통도사 일주문과 봉발탑 | |
| ‘영축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라고 쓴 편액은 대원군의 글씨입니다. 굵고 힘이 있어 대원군의 호방함이 보입니다.
‘국지대찰(國之大刹)’과 ‘불지종가(佛之宗家)’라는 주련은 조선조 말 최고의 명필이라는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이 쓴 것입니다. 나라 안에서 제일
큰 절로, 불가의 종갓집이라는 뜻이지요. 통도사 일주문은 700년 전 고려 충렬왕 31년(1305)에 세워진 건물로, 오래된 일주문 중에서는 드물게 큰 문입니다.
현 건물은 영조 46년(1770) 두섬(斗暹)대사가 중건한 것입니다.
|
 |
| | 양산 통도사 불이문(不二門) | |
사찰 소유 땅이 560만평이라는 대찰 통도사는 입구로부터 산문, 총림문,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不二門)을 거쳐야 절의 중심 영역에
들어가게 됩니다. 불이문은 통도사 건물 중 대웅전과 함께 잘 지어진 건물로 손꼽힙니다. 처음 지은 것은 고려 충렬왕 31년(1305)이나 현 건물이 언제
중건되었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대들보를 코끼리와 호랑이 조각이 이마로 떠받치고 있으며, 대들보 위에 삼각형의 합장재로 장혀를 걸치고 도리를 얹어 서까래를 받치도록 하였습니다. 보기
드문 건축양식입니다. ‘불이문’ 편액은 송나라 미불의 글씨이며 ‘원종제일대가람’은 일주문에 걸렸던 것입니다.
|
 |
| | 양산 통도사 대웅전 | |
통도사 대웅전은 건물 두채를 붙여 지은 모양으로, T자형으로 결합된 지붕 중심에 청동 찰간대가 있는 독특한 건물로 국보 제290호입니다.
화려한 기단석은 신라 선덕여왕 15년(646) 자장스님이 초창할 때 설치했다는 주장이 있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조선조 인조 22년(1644)에 중건된
건물보다는 오래된 것이 확실합니다. 지붕에는 조선시대에 만든 철제기와와 청동기와가 남아 있습니다. 수막새가 흘러내리지 못하도록 길이 30cm의 큰 쇠못을
박고 그 못대가리가 녹슬지 않도록 백자연봉을 올려놓았습니다. 고급 건축방식입니다.
건물 뒤편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어 법당안에 부처님을 모시지 않았습니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