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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C갤러리] 김영택의 펜화기행(紀行)(펜화에 담는 “한국전통 건축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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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양산(극락암) | |
천m가 넘는 장대한 연봉이 날개를 펼친 독수리와 닮았다는 영축산 기슭에 자리잡은 극락암의 대나무밭과 소나무숲이 영축산과 이룬
조화는 보는 이에게 감탄을 자아냅니다. 극락영지 위에 놓인 무지개다리와 영월루의 조화는 극락선원의 선풍을 크게 일으킨 경봉스님의 안목을 짐작케 합니다.
영월루 좌측 여여문의 편액글자는 스님의 소문난 서예솜씨를 보여줍니다. 경남 양산 통도사의 산내암자인 극락암은 뛰어난 명당터로서 큰 스님 세명이 나온다고
하는데 경봉스님 이후 남은 두 자리 때문에 하안거나 동안거 때가 되면 많은 스님들이 한소식 하려고 몰려든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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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리산 법주사(팔상전 측면) | |
국보 제55호인 팔상전(捌相殿)은 국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목탑입니다. 더구나 목조 5층 건물은 팔상전뿐이고요. 상륜부를 포함하여
높이가 22.7m입니다. 팔상전으로 부르는 이유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8폭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八相圖)를 모셨기 때문입니다.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 의신조사(義信祖師)가 창건한 고찰입니다. 60여동의 건물과 70여개의 암자를 거느린 큰 절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충청지방
승병의 본거지로 왜군과의 전투에서 몽땅 불에 타버립니다. 팔상전은 임란 후 1605년 공사를 시작하여 인조 4년(1626) 벽암(碧岩)선사가 완공을 합니다. 보통
웬만한 목조 건물은 1년이면 공사가 끝나는데 22년이나 걸린 것은 전란 후의 어려웠던 경제사정 때문에 각 층마다 구조와 수법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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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산 통도사(범종루) | |
새벽 2시58분, 도량석을 맡은 스님이 수박보다 큰 목탁을 치며 통도사 경내를 돌고 나면 범종루의 작은 범종을 두드리며 지옥을 깨고
영혼을 구한다는 새벽종송이 이어집니다. 그 뒤 날짐승을 제도한다는 운판이 고운 쇳소리를 하늘에 흩뿌린 뒤 물짐승을 위해 목어가 맑은 나무소리를 냅니다.
이어서 큰 법고를 승가대 학인스님들이 돌아가며 치고 나면 마지막으로 일만오천여근의 범종이 깊고 큰 소리로 영축산 계곡을 뒤흔듭니다.
통도사 범종루는 조선조 숙종 12년(1688) 수오대사가 세웠습니다. 규모가 큰 편으로 범종.법고.목어가 두개씩 있고 운판만 하나입니다. 펜화가는 통도사
범종소리를 들으면 숨이 막히고 눈물이 나는데 전생에 통도사에서 불화를 그리던 스님이었기 때문이랍니다. 보물 제1041호인 영산전 팔상탱화를 그렸다는데
워낙 세밀하고 색상이 뛰어나서 멋진 부분들을 취해 2004년 캘린더를 만들었습니다. 2003년 캘린더는 펜화로 만들었으니, 올해는 현생의 작품으로, 내년은
전생의 작품으로 만든 셈이지요.좋은 다비장까지 있으니 머리 깎고 눌러 살라는 스님도 있습니다만 집사람이 알면 그날이 다비장으로 가는 날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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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정산 범어사(일주문) | |
범어사는 신라의 왕이 꿈의 계시를 따라 의상(義湘)대사와 함께 7일 밤낮으로 제를 올려서 10만 왜군을 물리친 후 창건하였다는 절로,
창건부터가 일본과는 척을 진 셈입니다. 임진왜란 때는 치열한 격전지로 동래성의 함락과 함께 모두 불에 타서 광해군 5년에 중창됩니다. 한국 불교의 큰 맥인
경허(鏡虛) 스님이 범어사에 주석하면서 세운 법맥은 용성·동산 스님으로 이어지면서 1910년대 범어사는 한국 불교의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 됩니다.
범어사 일주문의 ‘선찰대본산’ 현판과 ‘금정산범어사’라는 현판은 1912년 해사당(海蛇堂) 스님이 쓴 글입니다. 직경이 1m, 높이가 1.45m인 원추형 돌기둥
4개를 나란히 세우고 그 위에 짧은 나무기둥을 올린 일주문은 국내 일주문 중에서 가장 개성이 넘치는 것입니다. 형태와 기법의 변화를 꺼리던 조선의 목수
중에도 이처럼 튀는 이가 있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 덕에 일주문이 범어사의 브랜드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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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정산 범어사(불이문) | |
| 불이문은 숙종 25년(1699)에 천왕문과 함께 지은 건물로 동산 스님이 쓴 ‘신광불매만고휘유(神光不昧萬古煇猷)’와 ‘입차문래막존지해
(入此門來莫存知解)’라는 주련이 걸려있습니다. 신광의 오묘한 뜻을 알기 위해 이 문을 들어서면서부터는 알음알이를 배척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깨달음의 세계는 지식이나 말로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찰대본산다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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