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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초 스님 열반지는 중국 오대산 금각사” |
- 붓다뉴스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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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현 티베트문화연구소장 |
“혜초 스님 열반지는 중국 오대산 금각사”
김규현 작가, “문헌상의 건원보리사는 금각사의 별칭” 주장
'붓다뉴스'에 <역 왕오천축국전 별곡> 연재 시작
구도여행기 통해 '왕오천축국전' 재조명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의 저자인 혜초(慧超, 704~787) 스님의 열반지는 중국 오대산(五臺山) 금각사(金閣寺)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화가이자 티베트불교 연구가인 김규현(58) 티베트문화연구소장은 본사 붓다뉴스에 연재할 <역 ‘왕오천축국전’ 별곡-혜초 따라 5만리>란 기고문을 통해 “혜초 스님이 <천발대교왕경>을 번역, 서문을 쓰고 여생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 오대산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는 금각사의 별칭일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이 글에서 “‘건원’이란 당나라 8대 황제인 숙종의 연호”라면서 “건원보리사는 고유명사라기보다는 건원황제의 명복을 비는 원찰이라는 상징적 보통명사”라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황제와 직접 연관이 있는 사원의 경우 정식 사원이름 대신 연호를 대신하기도 했다”면서 “숙종황제는 대종황제에 의한 금각사의 확장중건 이전에 이미 현판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현종 때부터 건립하기 시작한 금각사와 인연이 깊다”고 풀이했다.
오대산 남대봉 아래 현재까지 건재한 금각사는 스승인 불공삼장이 황제의 후원으로 금각사를 건립하고 함광을 비롯한 많은 제자들을 보내 나라와 황실의 평안을 기도한 원찰. 그래서 불공삼장의 6대 제자인 혜초가 80을 바라보는 노구를 이끌고 이곳에서 여생을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건원보리사가 금각사란 절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해도, 최소한 금각사에 속해 있던 12개 보살원락(院落)의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현장답사를 끝낸 김 소장의 결론이다.
오는 9월 중국학회 국제학술회의에서도 발표될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동서교류사와 혜초 연구의 권위자인 정수일 전 단국대 교수는 “금각사를 건원보리사 또는 그 보살원락의 하나로 보는 견해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정 씨는 “건원보리사가 어떤 고유명사가 아니라 숙종황제의 원찰로서의 ‘상징적 보통명사’라는 다정 선생의 탁견엔 일리가 있다”고 동조하면서 “혜초와 숙종황제의 관계 등 문제들에 관해서는 좀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소장이 이번에 붓다뉴스에 연재하는 <역 왕오천축국전 별곡>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던 실크로드 말고 티베트를 통해서 중국과 인도를 오가던 길이 약 50년간 존재했다는 점, 혜초 스님 이전에도 네 명의 신라 스님이 티베트를 경유해 인도로 성지순례를 떠난 행적을 밝혀낸 것 등이 값진 열매다. 불교의 이상향으로 묘사되기도 한 티베트의 매력을 감동적인 구도기와 함께 생생한 여행 체험을 담은 그의 글과 사진에는 눈에 보는 듯한 현장감이 느껴진다. 1908년에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에 의해 중국 감숙성 돈황(敦煌)에서 발견되어 고대의 동서 교류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는 <왕오천축국전>이 이번 연재를 통해 새롭게 조명될 전망이다.
성균관대학교와 해인불교전문강원을 거쳐 북경의 중앙미술대학, 라싸의 티베트 대학에서 수인목판화와 탕카(탱화)를 연구한 김 소장은 혜초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1993년부터 양쯔강, 황하, 갠지스강과 티베트 고원 등 12개국의 오지를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홀로 누볐다. 월간 <불광> 등 언론을 통해 티베트불교의 찬란했던 문명의 파편들을 구슬로 꿰어 세상에 알렸다. <티베트의 신비와 명상> <티베트 역사산책> 등 역저를 잇달아 내놓았고, 붓다뉴스에 연재하는 <역 왕오천축국전 별곡>을 비롯해 티베트관련 시리즈 10권 출간에 매진하고 있다. 저술과 강연을 통해 티베트 문화를 알리고 있는 그는 <왕오천축국전>과 관련한 영상 다큐멘터리와 음악 제작이란 새로운 원력을 세우고 있다.
김재경 기자[jgkim@buddha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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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 김규현 선생은 수(修) 학(學) 겸행의 거사이며, 대강을 종주하고 준령을 주름잡는 나그네다. 그 뜻에 걸맞게 열다섯 해 동안 일곱 차례나 혜초 스님의 지고한 체취가 묻어
오늘도 살아 숨쉬고 있는 곳곳을 승위섭험(乘危涉險)한 끝에 드디어 이 노작을 내놓았다. 그의 노고와 업적에 심심한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다정 거사는 이 역작으로 ‘혜초학’에 묵직한 댓돌 하나를 쌓아 올렸다. 근 백년 전 혜초 스님의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이래, 그 연구는 외국학계가 주도해 오다가 근간에야 가까스로 우리의
관심권 안에 들어와 나름대로 기리는 행사가 치려지고 몇 편의 글도 나왔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국내외 연구를 통관하면, 거개가 문헌적 고증이나 해석에 머물렀다. 이 구태를 깬 다정 선생은 현장을 몸소
밟고다니면서 눅진하게 ‘흙 묻은 글’을 써냈다. 그러기에 그 속에는 여러 가지 값진 탁견과 계발이 온축되어 있다. 선현에 대한 불초를 개탄만 해오던 우리에겐 실로 뜻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그간의 혜초 연구에서 나타난 이모저모의 빈틈들을 적잖게 메꿔주고 있다. 우선, ‘제1부 프롤로그’에서 지금까지 적바림에서 빠져 미제의 과제로 남아있던 스님의 입적지 건원보리사의 실체에
관해 새롭게 밝히고 있다. 오대산 골짜기를 두 번씩이나 샅샅이 뒤지면서 ‘건원’과 ‘보리’ 일어의 연원부터를 면밀히 추적해 건원보리사를 금각사(金閣寺)의 별칭이나 혹은 숙종 원찰로서의 상징적
보통명사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이것은 상당한 논리적 전거와 현장검증에 바탕한 추론으로서 심히 주목된다.
그리고 저자는 현장답사나 문헌연구를 근거로 기존 기록이나 연구에서 드러난 오류를 바로잡고, 미흡점을 보완하는 데서 학구적 실증성과 엄정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여행기의 현존본에는 간다라의
위치가 카시미르의 서북쪽으로 되어 있으나, 저자는 답사를 통해 그와는 달리 서남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또한 사률국(가즈니)은 계빈국의 서쪽이 아니라 남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저자는 법현,
현장, 의정 등 선행자들의 관련 기록이나 기타 문헌자료들을 해설과 미주에서 널리 인증하고 있으며, 스님의 행로에 관해서도 나름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파미르 고원을 넘나드는 실크로드 육로의 여러
갈래 길을 세세히 기록한 것도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런가 하면 책 속에는 기발한 해석도 눈에 띈다. 스님이 불학의 최고전당인 나란다를 스쳐 지나면서도 그에 관해 일언반구 없는 데 대해서 지금까지 연구자들 모두가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겨두었다.
그러나 저자가 외국 유학자의 2~3할만이 겨우 합격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스님의 시험 낙방을 그 이유로 드는 것은 자못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아소카왕이 망부석이 되어 ‘돌꽃송이’로 변한 데비
연인을 연모해 싼치 스투파를 세웠다는 이야기는 읽는 이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준다.
한편, 몇 군데서는 이른바 문명간의 ‘충돌’이나 인간 서로의 ‘증오’를 자칫 종교 본연과 관련지을 수 있는 편단(偏斷)의 소지가 점시(?視)된다. 이에 독자들의 균형잡힌 이해와 판단이 요망된다고
본다.
이 책은 ‘황금 물고기’를 화두로 삼아 정진하고 있는 다정 거사가 깊은 명상과 숱한 발섭(跋涉) 끝에 결실을 본 역작이다. 풍부한 해설과 역주, 본인이 직접 낚은 150여 점의 올칼러 사진, 여기에
구간마다에 따르는 ‘가이드 포인트’까지를 더했으니, 이 책이야말로 혜초 스님의 행적을 입체적으로 규명하고 체험할 수 있는 해설서이면서 안내서이기도 하다.
스님이 “달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네”라고 단장의 향수를 읊조린 바로 그 남천축국의 고행 길에서 거사도 “머나먼 북쪽하늘 아래 두고 온 고향”, “마음은
고향 하늘로 달려갑니다”라고 “한잔술에 설음을 타서 마신다”. 1,300년의 시차를 사이에 둔 멋진 대련이고 화음이다.
혜초 스님은 분명 한국의 첫 세계인이며 ‘위대한 한국인’이다. 스님의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은 국보급 진서이며 불후의 고전이다. 하여, ‘혜초학’ 천착에로의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숨겨진
경전이나 성물을 찾아나선 티베트의 ‘떼르뙨’ 처럼, ‘한 나무 아래 사흘을 머물지 않는’ 구도와 구지의 나그네가 되어, 다정 김규현 선생은 쉼없이 그길을 걷고 또 걸어가리라 믿어의심치 않는
바이다.
자광 정수일 두손모음
* 정수일 전 단국대 교수님은 동서교류사 및 혜초 연구의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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