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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20년 전인가, KBS-TV의 특집 다큐멘터리 「신왕오천축국전」8부작을 제작 반영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국제정세로 인해
완성을 하지 못하고 반쪽짜리로 만족해야 했다.
우리가 혜초사문이란 한 젊은 구도자를 위대하다고 추켜세워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만 그가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담보로 맡겨놓고 영원한 진리를 찾기 위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행위는, 그것도
무려 1천3백여 년 전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당시는, 땅과 바다가 편편하여 먼 바다 또는 땅 끝에는 한없는 허공의 절벽만이 있을 것이라는 우주관이 존재하던
시기였으므로,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행위가 위대하다는 찬사를 받을 만하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역마살을 타고 났는지, 어딘가 낯모를 곳으로 떠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님을 언제부터인가 가슴 속에 품었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위해서 20년 동안, 모두 7차에 걸쳐 1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그 행로를 답사한 바 있다. 물론 나도 님처럼 철저히 혼자였다. 그 작업은 워낙 방대한 것이기에 한, 두 번의 답사로는 무려 ‘오만리(五萬里)’나 되는 전 코스를 주파할 수가 없었고 또한
옛날에 님이 자유롭게 갔던 곳이라도 현재는 국경선이라는 인위적인 구역 때문에 갈 수 없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가능한 곳만 부분적으로 답사할 수밖에 없었다. ‘죽(竹)의 장막’
에 가려 있던 붉은 중국의 광대한 영토가 그랬고, 구 러시아연방이 해체되기 전의 중앙아시아 제국이 그랬고, 탈레반 정권시절의 아프가니스탄이 그랬다. 그럴 때마다 한 개인으로는 정말 어찌 할 수 없는
그런 거대한 장벽 앞에서, 역사는 때로는 후퇴도 하는 가보다, 라고 자조어린 푸념도 늘어놓기도 했었다.
그러나 누구도 흐르는 물길을 막지 못하듯, 역사는 앞으로만 나아간다는 것을 증명이나 하려는 듯, 금세기 안에는 열릴 것 같지 않았던 나라들의 대문이 점차로 열리게 되면서 나의 여행기도 부피를 점점
더해 왔다. 그러나 단행본으로 묶기에는 아직 마지막 관문이 열리지 않고 있었기에 시절인연(時節因緣) 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 기다린 보람이 있어서 얼마 전에, 그 마지막 대문마저 열렸다. 그곳은 바로 아프가니스탄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길목을 차단하고 있었던, ‘카이버’(Kyber Pass)란 고개였다.
그 고개를 넘는다는 것은 바로 간다라예술의 중심지로, 이스람 문명의 발원지로, 나아가 님의 마지막 경유지인 중앙아시아 대초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그 동안 갈 수없었던 모든 곳을
거처 종착지 장안(長安)에 이르는 길목에 서려있는 님의 체취를 100% 맡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바로 완전한 회향(廻向)이었다.
님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물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없는 ‘도전정신’일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는「왕오천축국전」의 행간 속에서 님의 또 다른 뜻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인위적으로 그어진 종교라는, 국경이라는, 민족이라는 그런 ‘선(線)’을 넘어서 보편적인 인간정신으로 회귀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님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예정된 내일을 바뀌게 할 수 희망의 ‘코드’가 아니겠는가?
『 어느 밝는 날 아침, 문득 푸른 파도 건너서 해동에서 온 손님이 있다면
그대에게 말해주리라. 짚신 벗고 맨발로 돌아가라고. 』
- 2005년 3월 상순, 봄이 오는 길목의 홍천강(洪川江) 우거에서
김 다정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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