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다섯 제자를 거느리고 녹야원에서 한동안 머무르셨다. 어느 날 새벽 부처님은 강물에 얼굴을 씻고, 강변을 조용히 거닐고 계셨다. 그때, 저쪽 강기슭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한 젊은이가 보였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마구 고함을 치며 뛰어다녔다.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설법을 하셨던 사르나트(녹야원)
“아, 괴롭다. 괴로워!” 그 소리는 가슴을 쥐어짜는 듯했다. 부처님은 말없이 강 건너에 있는 그 청년을 바라보고 계셨다. 이윽고 젊은이는 어떤 힘에 이끌리듯 강을 건너 부처님곁으로 왔다. 그는 부처님 앞에 무릎을 끓고 앉더니, “이 괴로움에서 저를 구해 주십시오”하고 하소연 했다. “여기에는 괴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소. 대체 무엇이 그렇게도 괴롭소?”
이 청년은 바라나시에 살고 있는 큰 부자의 외아들 야사였다. 야사는 왕에 못지 않게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전날 밤 야사의 집에서는 큰 잔치가 베풀어졌다. 흥겨운 잔치가 끝나고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야사는 잠에서 깨어났다가, 그토록 아름답던 시녀들이 제멋대로 흐트러져 추하게 자는 꼴을 보았던 것이다. 그것을 본 야사는 집을 뛰쳐나와 괴롭다고 외치면서 거리를 헤맨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을 만나 이야기하는 동안 미칠 것 같은 그의 마음은 점차 안정되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자기 자신에게 집착한 것이 다시없이 어리석은 일임을 알았다. 부처님은 야사에게 인생의 괴로움을 이야기하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야사는 그 길로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 그 뒤 아들의 소식을 전해 듣고 부처님을 찾아온 야사의 아버지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자 곧 신도가 되었다. 그가 부처님께 귀의한 최초의 신도였다. 야사와 같은 상류 가정의 아들이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바라나시에 퍼졌다. 더구나 야사처럼 재주 있고 학식이 있는 유망한 청년이 출가하여 부처님 아래에서 비구(比丘)가 되었다는 사건은 바라나시의 젊은 청년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 뒤 부처님을 찾아온 야사의 친구들이 뒤를 이어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오늘날 부처님 당시의 청년 야사처럼 용기있는 젊은이는 보기 힘들다. 하지만 깨달음을 지향하는 근원적인 보리심은 시대가 변해도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변화하는 이 시대에 한국 불교의 발전은 젊은 청년불자들의 몫이라는데는 누구도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대사회의 주인으로서 우리 청년 불자들은 각자 자기의 수행과 교육과 실천이라는 자기 성찰을 통하여 청년불교 운동으로 보다나은 미래를 건설하는 주역이 되는데 대한 화두로 삶아야 할 것이다. 특히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청년 불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서로 공부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보다 많은 이들에게 법음을 전하는 사명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