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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건축의 구성 요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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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람의 배치와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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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 경내는 일주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여기에 들어서면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허리를 굽히며 합장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자신이 신성한 영역에 들어왔음을 사찰과 자신에게 알리는 표시이기도 하다. 불교에서는 문이 단순히 출입을 위한 건축물이 아니라 이곳을 통해 속계에서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섰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욱 크다. 이 문은 사찰을 찾으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설 수 있고, 또한 이 문을 들어선 사람은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찰의 문에는 안과 밖을 구분 짓는 대문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금강문 등이 차례로 나타나며 기다랗게 이어진 길이 펼쳐진다. 물론 일주문이나 여타 다른 문들이 갖추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없어도 괜찮다. 굳이 문이 있어야만 이곳이 절인 줄 알겠는가. 산속 깊숙이 난 길을 걷노라니 웬일인지 마음이 맑아지기 시작하고, 문득 염불 외는 소리가 먼 메아리처럼 은은히 들려온다면 바로 그 근처에 절이 있을 테니까. 산사(山寺)라면 대개 길 한쪽은 산등성이, 다른 한쪽은 계곡이 흐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길을 올라가야 전각이며 탑 등이 자리하는 경내에 닿게 된다. 절에 따라서는 1㎞ 넘게 펼쳐진 길도 있다. 차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넓게 잘 닦여진 길이라도 가능하다면 차를 타기보다는 걸어가면서 자연을 느끼는 것이 좋다.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절로 올라가는 그 길이야말로 우리가 자연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사찰의 또 다른 멋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장성 백양사에는 갈참나무와 단풍나무가 길 양쪽으로 도열하듯 서 있고, 하동 쌍계사 벚꽃길은 벚꽃 피는 4월이면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이런 길은 걷는 그 자체로 효과만점의 훌륭한 삼림욕이어서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이 길을 걷는 것은 절을 찾아가기 위한 정신적 육체적 준비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사찰이 시작되는 공간 - 누를 들어서며 일주문에서 경내에 이르는 길을 다 걸어 올라오면 이제는 웅장한 누(樓)가 보인다. 이 누를 넘어서면 본격적으로 사찰 경내가 시작된다. 누는 누문(樓門), 혹은 누각(樓閣)이라고도 부르는데, 산사가 아니라 도심 속에 있는 사찰이라면 누는 물론이고 문도 일주문이 아닌 그야말로 출입문 형태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누가 있건 없건, 또 문의 형태가 어떻든 간에 그러한 외형적인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속세와 부처가 있는 공간이 구획되는 곳이 누요, 문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어쨌든 누라는 것은 사찰 경내를 포근히 감싸 안으며 이 안에서 밖을 바라다보며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절의 여러 건물 가운데서도 가장 매력적이고 친근한 공간이 바로 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누의 기능은 이것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목적도 있다. 누 안에는 널찍한 공간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일반인을 위한 법회나 강의가 열리기도 하고, 현판이나 편액 등을 걸어두고 보관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사찰 역사의 소중한 기록물 보관장소인 셈이다. 그 외에 누를 아주 멋있게 활용한 사찰도 많다. 예를 들어 청도 적천사처럼 잡다한 물건이란 물건은 다 치워버리고 깨끗하고 널찍한 공간을 만들어낸 다음 그 한가운데에 다기가 올려진 자그마한 책상 하나, 그리고 창문 가까이 연꽃이 피어 있는 수반 하나만 놓음으로써 고요한 적정의 세계로 만들어 놓았다. 이것은 누의 절묘한 미학적 공간 활용이라고 할 만하다. 또는 남양주 수종사처럼 절을 찾은 대중들이 밖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차 한 잔을 음미하도록 무료 다실로 꾸며 놓은 곳도 있다. 누구든 절을 찾는 사람을 위해 휴식의 공간으로 만든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여러 형태로 누는 활용되는데, 어느 경우든 우리나라 사찰의 넉넉함을 잘 대변하는 공간이 바로 누인 것이다. 사찰문화연구원 신대현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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