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산신이 불교에 융합된 시기, 다시 말해서 사찰에 산신각이 세워진 시기가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기록을 보면 17세기 이전의 것은 없고, 18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산신각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실제로 18세기가 되어서야 산신각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아주 미진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연구에 따라서는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어 그 시기가 좀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기록에는 18세기가 가장 위로 올라가는 연대가 되지만 이것은 산신각이 세워진 연대를 말할 뿐이다. 산신각이 아닌 산신 자체가 사찰에 혹은 불교에 흡수된 것은 그 이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뭐든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산신각이 18세기에 처음 세워졌다고 가정한다면 적어도 그 훨씬 이전부터 산신에 대한 신앙이 불교에 구체적으로 흘러들어갔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부산 범어사 산내암자인 사자암 삼성각에 걸린 용왕탱화
산신각은 19세기에 들어와 그 수가 급증하여 20세기까지 대부분의 사찰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지금은 어느 절이든 산신을 모시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인데, 다만 바닷가에 자리한 절에서는 산신 대신에 용왕이 봉안되기도 한다.
현재 대표적인 산신각으로는 경상북도 의성 등운산(騰雲山) 고운사(孤雲寺), 경상남도 양산 영축산(靈鷲山) 통도사, 전라남도 순천 조계산(曹溪山) 선암사(仙巖寺), 부산광역시 금정산(金井山) 범어사(梵魚寺) 등을 꼽는다. 하지만 산신각이 어떻게 이런 큰절에만 국한되랴. 비록 이름 높지 않은 절의 허름한 산신각일망정 그곳을 찾아 기도하는 서민의 마음을 들어주는 산신은 모두 우리에게 어머니 같은 푸근한 존재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