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의 역사 - 한국 / 중국 / 일본
중국 선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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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바르고 철저한 신심으로 마음을 순종하여 법을 듣는 사람은 지혜를 이룰 것이고 그 마음을 거슬려 순종치 않으면 지혜가 변하여 번뇌망상의 독해가 되는 것이다. (동산스님)  
선시의 역사 - 중국편 ①
중국 선禪의 시작 ~ 중당기(中唐期)

2. 선시의 역사
(1) 중국 선시

 양 무제 보통원년(普通元年, 520) 달마(達磨)라는 인도 수행자가 바다를 건너 중국 광주에 들어오면서 선(禪)은 본격화되었다. 달마로부터 시작된 선은 제2조 혜가 → 제3조 승찬 → 제4조 도신 → 제5조 홍인(601~674)에 이르러 어느 정도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는데 이때가 바로 당(唐)의 건국 초였다.

중국 광동성 조계산(曹溪山)에 모셔진 보리달마
  홍인(弘忍)의 제자 가운데 대통신수(大通神秀, 606~706)와 혜능(慧能, 638~713)이 있었다. 이 둘은 각각 북종(北宗)과 남종(南宗)으로 특색 있게 발전해 가면서 선은 개화(開花)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이 무렵 당은 현종(玄宗)이 즉위하면서(712) 그 황금기(盛唐期, 712~766)를 맞게 되는데 이때는 정치, 경제, 문화면에서 전례 없는 발전을 거듭했고 수도 장안은 세계 제일의 도시가 되었다. 이때 시단에서는 왕유(王維), 이백(李白), 두보(杜甫) 등이 잇달아 출현했다. 
  선은 원래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장했기 때문에 언어 사용을 극도로 절제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선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의 선승들은 언어 표현의 수단으로 시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면 시는 언어 속의 설명적인 요소를 최대한 절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를 빌려 깨달음의 경지를 읊은 최초의 선시가 신수와 혜능에게서 나왔다. 물론 그 이전에 제3조 승찬의 <신심명(信心銘)>이라는 잠언시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본격적인 선시의 출현은 신수와 혜능의 개오시(開悟詩=悟道)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古禪師悟道頌>, 석우보화(1875~1958) 작, 관문사 소장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의 제자 신수(神秀)가 지은 게송과 이에 대하여 혜능대사(慧能大師)가 지은 게송

 이 두 사람에 뒤이어 영가현각(永嘉玄覺, 675~713)이라는 선승이 출현, <증도가(證道歌)>를 남겼다. 이 증도가는 깨달음의 희열을 노래한 장편시로서 깨달음의 기쁨을 참지 못하여 단 하룻밤 만에 완성했다는 작품이다.
 이 뒤를 이어 석두희천(石頭希遷, 709~791)의 <참동계(參同契)>가 나왔다. 선승들이 시를 빌려 자신의 심정을 읊은 것(以詩萬禪)과 마찬가지로 시인들 사이에서도 시의 정취를 심화시키기 위하여 선에 접근하는 풍조가 일기 시작했다. 그 최초의 시인은 왕유(王維, 701~761)였다.

 왕유는 선의 체험을 그대로 시화(詩化)했던 시인으로서 후세에 선시의 거장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왕유는 신회(神會, 670~762), 보적(普寂, 651~738) 등 당시 제1급 선승들과 교제가 깊었으며 시간만 나면 언제나 좌선의 실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왕유에 이어 맹호연(孟浩然, 689~740), 이백(李白, 706~762), 두보(杜甫, 712~770), 장계(張繼, ?~?) 등 성당(盛唐)의 제1급 시인들이 다투어 선에 접근하기 시작하면서 당시(唐詩)라 일컬어지고 있는 불후의 명작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백은 선(禪)에서 출발하여 도가(道家)의 유현한 세계로 들어갔고, 두보는 비참한 현실고(現實苦)를 시화(詩化)해 나갔다. 
마조도일선사(馬祖道一, 769~798)

 중당기(中唐期, 767~829)에 접어들자 마조도일(馬祖道一, 769~798)이 출현, 중국 선종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외치며 지금까지의 상류층 중심의 선을 서민층 중심의 생활선(生活禪)으로 구체화시켰다. 마조의 제자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인 선수행장(禪修行場)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백장은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실천을 통하여 집단농장 체제의 선 수행장을 만들었는데 이 선 수행장의 생활 지침서인 <백장청규(百丈淸規)>가 이때 나왔다. 말하자면 인도의 소극적인 계율이 중국의 적극적인 윤리강령으로 바뀐 것이다.

 전설적인 인물 한산(寒山,766?~779?)이 나타난 때도 이 무렵이었다. 한산은 인생무상을 읊어 산거선시(山居禪詩)의 전형을 남겼다. 이어 한퇴지, 백낙천, 유종원, 이하 등이 등장한다.


 철저한 배불론자(排佛論者)였던 한퇴지(韓退之, 768~824)는 불경의 역문체(譯文體) 영향을 받아 산문으로 시를 쓰는 산문체 시형식을 완성시켰다. 그는 또한 선사상(禪思想)을 유학(儒學)으로 개조하였으며 성리(性理)를 논하는 그의 문장은 송대 성리학(性理學)의 기초가 되었다.
 백낙천(白樂天, 772~846)은 원화체(元和體)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원화체란 불경 속의 게송(偈頌) 번역문체의 영향을 받아 중당기(中唐期) 원화 연간(元和年間, 806~824)에 성립된 통속시문체(通俗詩文體)를 말한다. 원화체는 <장한가(長恨歌)>를 통하여 그 극치를 이루고 있다. <장한가>는 안녹산의 난(755)에 얽힌 현종과 양귀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  그런데 백낙천의 이 <장한가>는 《잡보장경(雜寶藏經)》 환희국왕연(歡喜國王緣)의 일부가 변문(變文)되어 민간에 흘러다니던 설화를 근거로 창작되었다고 한다.

 백낙천은 또한 마조의 제자인 흥선유관(興善惟寬, 755~817)에게서 정식으로 선의 법맥을 이어받고 있다.
 
 
 馬祖 ┌ 百丈        ─   黃壁   ─  臨濟
        │        
        └ 興善惟寬  ─  白樂天
 유종원(柳宗元, 773~819)은 주로 선철학(禪哲學: 天台學)의 심오한 철리를 시화(詩化)하려고 했다.
 시의 귀재인 이하(李賀, 790~816)는 언제나 《초사(楚辭)》와 《능가경(?伽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의 비극성은 《초사》에서 유래되었으며 존재의 덧없음과 세월의 신속함을 꿰뚫어보는 그의 예지는 초기 선종의 교과서인 《능가경》에서 유래되었다. 이 무렵 선승의 작품으로는 동산양개(洞山良箇, 807~869)의 <보경삼매가(寶鏡三昧歌)>가 있다.
 
출처 - 석지현 엮음, 《선시감상사전 禪詩鑑賞事典》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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