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불교문화유산을 찾아서
원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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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길들여 유순해진 말은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믿음과 계율과 그리고 정진과 선정은 법의 중요한 도구이다. 법구경 상유품(象喩品)  
원효방(元曉房)
 
원효방(元曉房)은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개암사 뒤 울금바위(높이 40m)에 있는 석굴(石窟)로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수도했다고 전해오는 곳이다.



676년(신라 문무왕 16년) 원효(元曉 : 617∼686)와 의상(義湘(相) : 625~702)이 개암사에 와서 개암사를 중건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곳에서 원효가 기거했음을 알 수 있다. 

 
원효방의 형태가 어떤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토굴이나 석굴일 것으로 추정된다. 개암사 뒷산에 있는 울금바위에는 남·북·서 3 곳에 석굴이 있다.

북쪽의 석굴은 3 곳중 제일 협소하며 백제부흥운동 당시 군사들을 입히기 위해 베를 짰다해서 베틀굴이라 전해오고 있으며, 서쪽의 석굴은 4∼5천명 정도가 수용이 가능한 곳으로 3 곳 중 가장 큰 굴로 역시 백제 부흥운동 당시 복신(福信 : ?~663)이 병을 이유로 나오지 않았던 굴이라하여 복신굴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안쪽에는 옥천이라 부르는 석간수가 사철 가뭄도 모른채 새어 나온다.

남쪽의 굴은 바위절벽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표에서 20 여 m 정도 되는 암벽중간에 있어 사다리가 없이는 도저히 오를 수가 없는 곳이다. 석굴의 크기는 6∼7 평 정도이고, 이 석굴 바로 옆에 3 평 크기의 또 하나의 석굴이 있다. 석굴에서 바라보면 변산의 산들이 첩첩이 발아래 포개져 들어 온다. 3 곳의 석굴중 가장 경관이 뛰어나고 종일 햇볕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보나, 고려시대의 문신 이규보(李奎報 : 1168~1241, 고려시대의 문신)가 남행월일기에 남긴 글로 보아 이곳이 바로 원효방(元曉房)으로 추정된다.


 다음은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에 남겨진 원효방의 내용이다.

 "부령 현재(縣宰 ) 이군(李君) 및 다른손님 6, 7명과 함께 원효방에 갔다. 나무사다리가 있는데 높이가 수십층이나 되어 다리를 떨면서 올라가니 정계(庭階)와 창호(窓戶)가 수풀 끝에 솟아나 있는 듯 했다. 종종 호랑이와 표범이 사다리를 타고 올려오려다가 결국 올라오지 못한다고 한다 .곁에 한 암자가 있는데, 전하는 얘기에 의하면 사포성인(蛇包聖人)이란 이가 옛날 머물던 곳이라 한다. 원효가 와서 살자 사포가 모셨는데 차를 달여 원효에게 드리려고 했으나 샘물이 없어 딱하게 생각하던 중, 물이 갑자기 바위틈에서 솟아나왔는데 맛이 매우 달아 젖과 같으므로 차를 달였다고 한다.

 원효방은 겨우 여덟 자쯤 되는데, 한 늙은 중이 거쳐하고 있었다. 그는 삽살개 눈썹과 다 해어진 누비옷에 도통한 모습이 고고하였다. 방 한 가운데를 막아 내실과 외실을 만들었는데, 내실에는 불상과 원효의 진용(眞容 : 초상화)이 있고, 외실에는 병 하나, 신 한 컬레, 찻잔과 경궤(經軌 : 불경 등을 넣도록 나무로 네모나게 만든 그릇)만 있을 뿐, 취사도구도 없고 시중드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다만 소래사에 가서 하루 한 차례의 재(齋 : 불공)에 참예할 뿐이라 한다"

 이러한 원효방이 위치한 개암사는 변산 4대 사찰의 하나로 울금바위 아래에 자리하고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으며, 역사는 길고 백제 부흥을 위해 3년동안 독립 운동을 벌린 본산으로 역사의 현장인 주유산성이 지금도 4㎞쯤 남아있는 곳이다. 개암사는 634년(백제 무왕 35년)에 묘련대사가 세웠다고 하며, 삼국통일 후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이 곳에 머물면서 676년(문무왕 16년)에 중수하였다. 대한불
                                     개암사
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개암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282년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공격을 피해 이곳에 성을 쌓을때, 우(禹)장군과 진(陳)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좌우 계곡에 왕궁의 전각을 짓게 하였는데 동쪽을 묘암, 서쪽을 개암이라고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려 충숙왕 1년(1314)에 원감국사가 이곳에 와서 절을 다시 지어 큰 절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그 뒤에 여러번 수리가 있었다.

 석가모니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包)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多包) 양식으로 꾸몄다. 우람한 기둥 덕에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조각기법에서도 세련미가 있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건물로 대웅전의 문화재적 특징은 아래와 같다.



지정번호
 : 보물 제 292호
 지정연월일
 : 1963년 1월 21일
 시대
 : 조선시대 중기
 소재지
 :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714 개암사
 소유자
 : 개암사
 분류 및 규모
 : 사찰건축, 1동


출처: http://my.dreamwiz.com/ohjs7/wh/wh%20m-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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