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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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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공부를 여실히 지어 나가면 저절로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 원만해 진다. (동산스님)  
나의 인연 어디까지일까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지구는 왜 태양에 달라붙지도 않고 멀리 도망가지도 않는 일정한 궤도를 항상 유지하고 있는지, 가만 생각해보면 굉장히 신기한 일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태양과 지구가 궤도를 유지하고 있다지만, 만유인력법칙 자체가 우리의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질량을 가진 물질들이 있다면 그들 사이에 어떤 힘이 작용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만약에 지구가 궤도를 벗어나 태양 쪽으로 조금만 기울게 된다면 여지없이 태양 인력에 끌려 태양과 충돌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지구가 궤도에서 태양 반대쪽으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태양계의 미아가 되고 만다.

그래서 결국은 질량을 가진 물질들이 어느 일정 공간 안에 서로 모여 있다면 그들 사이에 인력이 작용하여 결국은 그들 모두가 충돌하여 하나로 모아지게 될 것이다. 반대로 질량을 가진 물질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면 그들은 모두 서로 더 떨어지게 되어 끝내는 분산되고 말 것이다. 이런 생각을 은하계가 모여 있는 우주 공간에 적용해본다면 우리의 우주가 확산할 것인지 아니면 축소할 것인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별들이 서로 모여 있다면 끝내는 은하계가 축소할 것이고, 별들이 너무 떨어져 있다면 은하계는 확산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여기서 생긴다. 왜냐하면 우리 우주 공간 안에서 질량을 가진 물질이라는 것이 별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그런 별들만이 이 우주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형태의 물질이 존재해야만 한다.

그것을 천체물리학자들은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고 부른다. 얼토당토않게 암흑물질이란 존재를 왜 필요로 할까? 60년대 츠비키라는 물리학자는 우리의 은하단이 우주공간 안에서 자체 회전하면서도 유지할 수 있는 동력학적 평형상태를 설명하려고 했는데, 존재하는 별들만 갖고서는 도저히 그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별들 말고도 다른 존재 방식의 질량을 갖는 물질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생각은 70년대 말 루빈의 나선은하 속도 관찰을 통해서 확인되었는데, 이런 물질을 암흑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물질들의 질량의 합은 우주 전체 질량의 90%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결국 우리가 (원리적으로) 볼 수 있는 우주의 물질은 전체의 1/10에 그치고 마는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암흑물질의 밀도의 차이에 따라서, 즉 암흑물질이 일정 공간에 몰려 있다면 우주는 축소하고 말 것이며, 널리 퍼져 있다면 우주는 확산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암흑물질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암흑물질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 퍼져 있어 바로 내가 서 있는 이 땅에도 암흑물질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질의 세계가 아닌 삶의 공간에서 볼 때, 암흑물질이 나를 지배한다는 말은 나의 인연을 지배한다는 말과 비슷하다. 나의 인연은 나 아닌 다른 존재와의 관계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면 나 아닌 타자의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내가 속한 가계의 선조와 친지들, 내가 속한 사회의 친구들과 이익집단의 구성원들만이 나 아닌 타자의 모두인가를 반성해야 한다.

저 산 위의 상수리나무, 아무 말 없이 흐르는 개울의 돌멩이들, 몇 십 년만의 처음이라고 떠드는 눈송이들, 모두 나 아닌 타자의 범주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나아가서는 책상 위에 쌓이는 먼지와 들에 피어 아무도 보지 않는 꽃대에 붙은 잔털들, 맑게 갠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살들 모두 타자의 한 구성원이다.

그것말고도 내가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무수히 많은, 오히려 내가 아는 것이란 아주 적은 한 구석에 지나지 않는, 그런 삶의 암흑물질들 모두가 나의 인연을 꿰어 가는 우주적 관계의 타래들이다. 보이는 물질에만 나의 인연의 끈을 찾는다면, 내 연분은 왜 이 정도밖에 안될까라는 자조와 인과율이 맞지 않는 현생에 대한 불만이 생길 수도 있다. 생활 속에서 업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대부분 거대한 운명에 나를 맡길 수밖에 없다는 식의 자조적인 분위기를 띄고 그 말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보이는 물질에 국한하지 않고, 보이지 않고 쉽게 알 수 없지만 그런 삶의 암흑물질에 섭동할 수 있는 깨달음이 있다면 이미 부처의 마음에 많이 근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최종덕/상지대 교수(jdchoi@chiak.sangj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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