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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으라, 영원의 길 열려있으니…”
올해도 어김없이 해가 바뀌고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말이 잘 안나오고 기운도 없습니다. 98년 동안 이 몸뚱이를 끌고 다녔으니 이제 고장이 날 때도 되었지요. 곧 이 몸을 벗어던지고 어디론가 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생부지래처(生不知來處) 사부지거처(死不知去處)라.
온 곳이 어딘지 모르는데 갈 곳을 어찌 알겠는가?
여기 모인 대중여러분은 이 몸 받기 전에 어디에 있었으며 어떻게 이 세상에 온줄 알고 계십니까? 아시는 분 계시면 한번 말씀해 보세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기 모인 대중 여러분은 아마도 이 생에 온지 한 50년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근원적인 물음에는 대답을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몸뚱이는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이어주는 배에 불과합니다.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 몸뚱이를 움직이는 것은 누구입니까? 그 주인공이 누구냐 말입니다.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서 100년을 이 몸뚱이와 함께 살지만 주인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왔다 간단 말입니다. 그것을 모르면 그냥 화장실만 왔다 갔다 할 뿐입니다. 부처님 법은 바로 이 몸뚱이를 움직이는 진실한 참나를 찾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실상(實相)을 바로 볼 줄 알면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집착 때문에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실상을 모르면 어떤 것을 봐도 그것의 형상에 마음이 빼앗겨 애착과 욕심을 내게 됩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이해타산을 떠나 실상을 바로 알면 집착을 벗어날 수 있다 이겁니다. 이것이 바로 무상(無常)입니다. 우리 모두 50년 후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때까지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땐 다들 어디로 갑니까? 죽는 것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몸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죽을 때는 이 몸뚱이와 원수를 집니다. 평생 동안 그렇게 몸을 보호했건만 이 몸을 버리고 갈 때는 산 거북 껍질 버리는 것처럼 고통스럽습니다. 냄새나는 이 몸뚱이를 내 보내기 싫어서 별짓 다 하다가 할 수 없이 보냅니다. 잠시 이생에서 몸뚱이 받아 살고 있지만 나를 낳은 부모도 내 것이 아니라고 몸뚱이를 버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는데 왜 그것을 바로 보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미래를 꿈꾸거나 과거를 후회하며 살아갑니다. 현재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를 망각하고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며 살고 있다는 말 입니다. 그러나 그건 다 헛된 일입니다. 부귀영화가 그렇게 대단한 것입니까? 지나고 나면 한줌 재보다 더 허망한 것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생과 사가 허망한 것임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이 몸뚱이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죽음에 대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왕자로 태어나 호의호식하며 부귀영화를 다 누리며 사셨습니다. 그러나 왕궁의 동서남북을 통해 늙고 병들고, 죽은 사람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시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셨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어떻게 하면 생노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처님은 출가해 설산에서 6년 동안 고행을 하셨습니다. 우리 스님들도 부처님의 법을 따라 출가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 몸을 금생에서 제도 못하면 어느 생에 제도하겠는가 하는 마음자세로 열심히 수행정진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억만 겁으로 늘어난다 하더라도 바로‘이 순간’이라는 찰나가 모여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몸뚱이가 성할 때 열심히 수행 정진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합니다. 100년을 사나 1초를 사나 똑 같은 한 찰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순간순간 깨어있으면 영원불멸하게 사는 것입니다. 또 하나 가르쳐 드리자면 살아가면서 복 많이 지으십시오. 우리가 지은 복은 영원히 새지 않고 독에 물을 깃는 일과 같습니다. 무엇보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공덕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준다는 생각도 말고, 받는다는 생각도 말며, 이 물건이 어떤 것인지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과거의 악업을 씻고 다음 생에 사람의 몸을 받거나 생사윤회의 고통을 끊는 지름길입니다. 이 세상에서 착한일 한번 한적 없다면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가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잘 하고 못하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바보라 할지라도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은 다 압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르고 짓는 죄보다 알고 짓는 악업이 더 많습니다. 죄를 지으면 그 고통은 이 몸이 받습니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도 착한 사람, 못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과거에 지은 업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몸을 바꾸게 됩니다. 그때 악업을 쌓은 사람은 뱀이나 독사의 몸이 예뻐 보입니다. 그래서 그 몸에 들어가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실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시 태어난다 해도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 등 6도 가운데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니 여기 모인 대중들도 염라대왕이 묻거든 “봉은사 법회에 와서 좋은 법문을 듣고 열심히 수행정진 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말없는 부처님이 되십시오. 천언만당불여일묵(千言萬當不如一默)’이라 했습니다. 천 번 말해서 만 번이 옳더라도 한 마디도 안한 것만 못하다는 뜻이지요. 부처님도 열반에 드실 때 “나는 한마디도 한적 없다, 열심히 수행정진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말 보다는 부처님 말씀을 믿고 따르며 열심히 수행하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불생불멸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것도 아니요 멸하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지요. 언뜻 듣기에는 조금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불생불멸의 도리는 저 시내 가에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내가 지금 막 지껄이던 소리는 어디로 갔습니까? 찾을 수 없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은 늙지 않고 맛도 똑 같습니다. 사람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인간의 본래 진면목은 청정자성입니다. 중생 모두가 부처가 될 성품을 가지고 있다 이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쁜 일을 행하고 거짓말을 해서 마음에 때가 끼게 되었을 뿐입니다. 중생들은 무지해서 이 같은 청정자성의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저 삼천대천세계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가 변하지 않듯이 인간의 마음 또한 변하지 않습니다. 배를 젓는 사공이 엉뚱한 방향으로 배를 젓는다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마음 또한 마음을 쓰는 이 주인공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살아보니 100년도 잠깐입니다. 여러 말 할 것도 없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복 많이 짓길 바랍니다. 정리=김두식 기자 doobi@buddhapia.com 사진=고영배 기자 ybgo@buddhapia.com
법회 동참자가 본 고송 스님
만공·한암스님에 수학…현대불교사 증인 “모습 자체가 법문, 뵙는 것만으로도 공덕”
2월 16일 봉은사 법왕루에서 봉행된 고승초청법회. 500여 사부대중들이 법당을 가득 메웠다. 그 가운데서도 칠보사와 봉은사 조실로 주석하고 있는 석주스님이 단연 눈에 띈다. 석주스님은 95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법회 내내 꼿꼿한 모습으로, 일반 재가 불자들과 함께 고송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석주스님의 말씀. “내가 출가하려고 입산해 보니 고송스님은 벌써 선방을 드나드는 수좌였어. 그때부터 일생을 선원에만 다니며 선(禪)만 하셨지. 당대의 고승이라고 칭송받는 만공·한암 스님 밑에서 수학했으니 지금은 조계종 최고의 수행자라 해도 손색이 없지.” 고송스님은 1906년 생으로 1920년 팔공산 파계사에서 상운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23년 용성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은 이후 1930년부터 무려 15년 동안 금강산 마하연, 유점사, 신계사를 거쳐 묘향산 보현사에서 당대 최고의 선승들과 함께 수행하신 한국 근현대불교사의 산 증인이다. 특히 망월사 결사 때 장판 한 장에 두 명씩 앉고, 아침 죽과 점심만 먹고 오로지 수행정진에만 몰두했고 한번도 종단의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종단의 어떤 분란에도 휘말리지 않은 유일한 분이시기도 하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이사장 지관스님은 2월 17일 봉은사 고승초청법회의 법사로 참석해 “어제 법문하신 고송스님은 굳이 법문을 하지 않아도 얼굴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것이 법문”이라며 “한국의 대표적인 선승을 직접 보는 것만 해도 무한한 공덕이 있다”고 칭송했다. 법회에 동참한 사부대중들은 98세의 연세에도 저렇게 정정하게 법문하신 스님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울 사당동에 거주하는 유 정심행(52) 보살은 “오늘 스님을 처음 뵈었는데 노구를 이끌고 법문하시는 모습이 마치 부처님처럼 보인다”며 “앞으로도 건강하시어 대중들을 위해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기도 분당에 산다는 강 보리심(33)보살도 “보통 70세만 넘어도 거동이 불편해 움직이지도 못하시는데 스님은 아직도 건강하시고 80이 안되어 보인다”며 “수행력이 몸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아 우리 같은 젊은이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백발이 성성한 한 노보살은 “죽기 전에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파계사 내원에 들러 스님의 법문을 다시한번 듣고 싶다”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깨쳐야 한다는 스님의 법문은 죽음으로 인한 괴로움을 말끔히 없애 주는 것 같아 기쁘다”며 연신 웃음을 내 보였다. 또한 전북 장계 성관사 월성스님의 유발 상좌라고 소개한 나기태(44)씨는 “은사스님이 꼭 고송스님의 법문을 한번 들어보라고 해서 법회에 참석하게 됐다”며 “불생불멸한 진리를 물에 비유해 청정자성이 본래 인간의 진면목이라는 법문이 너무 가슴에 와 닿는다”고 말했다. 조계종 명예 원로의원이신 고송스님은 해방이후 오대산 상원사를 비롯해 여러 수도처에서 오로지 수행이라는 한 길을 걸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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