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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번지 가야산(伽倻山) 서남쪽 기슭에 있다.
[소속]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이다.
[연혁] 신라 애장왕 때(800-809)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창건했다. 신림(神琳)의 제자 순응은 766년(혜공왕 2) 중국으로 구도의 길을 떠났다가 수년 뒤 귀국하여 가야산에서 정진했으며, 802년(애장왕 3) 이 절의 창건에 착수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성목태후(聖穆太后)가 불사를 도와 전지(田地) 2,500결을 하사했다. 그 뒤 갑자기 순응이 죽자 이정이 그의 뒤를 이어 절을 완성했다. 해인사라는 이름은 <화엄경> 중에 나오는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유래한 것으로 화엄사상을 천명하고자 하는 도량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창건주 순응이 의상(義湘; 625-702)의 법손(法孫)이므로 이 절은 의상의 화엄10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이어 고려 태조(재위 918-943)의 복전(福田)이었던 희랑(希朗)이 이 곳에서 화엄사상을 펼쳤다. 태조는 희랑이 후백제의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데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로 삼고, 전지 500결을 헌납하여 사우(寺宇)를 중건하게 하여 당시 우리나라 제일의 도량으로 만들었다.
한편 1398년(조선 태조 7)에는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 있던 팔만대장경판을 지천사(支天寺)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 곳으로 옮겨왔다. 그 뒤 세조는 장경각(藏經閣)을 확장하고 개수했으며, 1483년(성종 14)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가 해인사 중건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1488년 인수왕비(仁粹王妃)와 인혜왕비(仁惠王妃)가 등곡 학조(燈谷 學祖)에게 공사를 감독할 것을 명하고 대장경판당(大藏經板堂)을 중건했다.
또한 3년 동안의 공사 끝에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법당과 요사 160칸을 신축했다. 그러나 1695년(숙종 21) 실화하여 여러 요사와 만월당(滿月堂), 원음루(圓音樓)가 불 탔고, 그 이듬해 봄 또 다시 서쪽 요사와 무설전(無說殿)이 불 타자, 뇌음(雷音)이 중건했다.
1743년(영조 19) 다시 실화하여 큰 축대 아래 수백 칸이 불 탔으며, 당시 경상도 관찰사 김상성(金尙星)이 도와 능운(凌雲)이 중건했다. 1763년에도 실화했으나 관찰사 김상철(金尙喆)이 도와 설파 상언(雪坡 尙彦)이 중건했으며, 1780년(정조 4)에도 불이 나자 5년만에 성파(惺坡)가 중건했다.
1817년(순조 17) 또 다시 큰 불이 나서 수천 칸이 모두 불 탔는데, 관찰사 김노경(金露敬)의 도움으로 영월(影月), 연월(淵月) 등이 소규모로 중건했다.
그러나 1871년(고종 8)에는 법성료(法性寮)가 다시 실화되었다. 이처럼 이 절은 창건 이래 수많은 화재를 겪었으나 장경각만은 온전히 보전되어 왔다. 조선시대의 불교 탄압시에는 36개의 절만을 남겨 둔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이 절은 교종(敎宗) 18개 절 중의 하나로 남아 전답 200결과 승려 100명을 지정받았다.
또 1902년 원흥사(元興寺)를 전국의 수사찰로 정하고 전국에 16개 중법산(中法山)을 두었을 때 이 절은 영남 중법산으로 수사찰이 되었으며, 1911년 일제강점기에 전국을 31본산으로 나누었을 때에는 16개 말사를 관장하는 본산이 되었다. 현재는 말사 75개와 부속 암자 14개를 거느리고 있다.
부속 암자 중 유서가 깊거나 규모가 큰 것은 신라 왕실의 원찰로 전해지는 원당암(願堂庵)을 비롯하여 백련암(白蓮庵), 지족암(知足庵), 희랑대(希朗臺), 국일암(國一庵), 약수암(藥水庵), 용탑암(龍塔庵), 삼선암(三仙庵), 금선암(金仙庵) 등이 있다. 팔만대장경판을 봉안한 법보사찰(法寶寺刹)로서 선원(禪院)과 강원(講院), 율원(律院) 등을 갖춘 총림(叢林)이다. 부설기관으로는 1993년에 설치한 장경연구소가 있다.
[유적.유물]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삼성각, 응진전, 조사전, 퇴설당(堆雪堂), 응향각, 관음전, 궁현당(窮玄堂), 구광루(九光樓), 경학원(經學院), 명월당(明月堂), 사운당(四雲堂), 해탈문, 국사단(局司壇), 봉황문, 일주문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팔만대장경(국보 제32호)과 장경각(국보 제52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64호),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보물 제518호), 반야사 원경대사비(보물 제128호), 사간장경(寺刊藏經) 중의 보물 다수 등이 있다.
이 중 대적광전은 중심 법당으로서 지금의 건물은 1817년(순조 17) 제월(霽月)과 성안(聖岸)이 건립한 것이다. 내부에 봉안된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상, 보현보살상은 본래 성주군 금당사(金塘寺)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이 절이 폐사될 때 용기사(龍記寺)로 옮겨졌다가 1897년 범운(梵雲)에 의해 이 곳에 봉안되었다.
장경각은 법보사찰로서의 이 절의 기본정신을 대변해 준다. 고려대장경판을 봉안해 둔 2개의 판전으로서 경판의 보관을 위한 가장 과학적이고 완전무결한 걸작으로 인정 받은 건물이다.
그 밖에도 이 절의 성보(聖寶)로는 전중탑(庭中塔)과 묘길상탑(妙吉祥塔), 가야산 석불, 원경왕사비(元景王師碑), 홍치4년명동종(弘治四年銘銅鐘), 오백나한도, 금은자사경(金銀字寫經), 희랑조사상, 세조영정, 상탑향로(象塔香爐), 무공수정(無孔水晶), 옥등잔, 진주등(眞珠燈), 순은화병, 관욕소관(灌浴哨罐), 오동향로(烏銅香爐), 순은다기(純銀茶器), 순은향로(純銀香爐), 순은방향로(純銀方香爐), 향로개(香爐蓋), 요령, 감로병, 일영의(日影儀), 봉촉대(鳳燭臺), 귀형촉대(龜形燭臺), 관복(官服), 오조어필첩(五朝御筆帖), 법라(法螺), 옥제조화(玉製造花), 금강저(金剛杵), 각사인(各寺印), 헌종 어필, 삼보인(三寶印), 계첩석판(戒諜石版), 팔상병(八相屛), 33조사영병(祖師影屛), 복수수병(福壽繡屛), 숙종 어필, 화초수병(化草繡屛), 화조오채병(花鳥五彩屛), 흑판복수병(黑板福壽屛), 복수채병(福壽彩屛), 대화로(大火爐), 금산첩(禁山牒), 방울, 대종, 소종(小鐘), 경허 성우(鏡虛 惺牛; 1849-1912)의 친필, 명문와(銘文瓦), 향합(香盒) 등이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동문선, 동국여지승람, 조선금석총람, 조선사찰사료, 조선불교통사(이능화, 신문관, 1918), 합천해인사지(한찬석, 1949), 해인사지(김설제), 1963), 한국의 사찰 7 -해인사(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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